해외 연수기
University of California 연수기 (Irvine, Dec. 2017~Feb. 2019)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임병찬 교수
저는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의 뇌전증 및 줄기세포 연구소로 1년 3개월간 연수를 무사히 잘 마치고 2019년 3월 부터 다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급하게 연수 결정이 된 터라 준비기간이 짧았고 연수 장소를 정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우선, 그동안 진행해 왔던 뇌전증 및 유전성소아신경질환의 유전원인 연구를 기반으로 새로운 연구분야를 개척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을 연수의 목표로 정하고 연수 장소를 알아보았습니다. 다행히도 삼성서울병원 소아신경과 이지훈 교수님의 추천으로 UC Irvine의 Robert Hunt교수에게 연락하여 인터뷰 후 연수 장소를 정할 수 있었습니다.
1. Stem cell 연구
제가 연수를 간 부서는 department of anatomy and neurobiology로 우리 대학과 비교해 본다면 해부학 혹은 신경해부학 기초교실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physiology, biochemistry 등의 기초교실과 신경과, 소아과 등의 임상교실이 함께 기능적인 연구 단위인 epilepsy research center, stem cell research center, autism research center를 구성하고 있어 다양한 연구분야가 융합되어 있는 형태였습니다. 실제로 Hunt 교수는 전기생리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박사 후 연구과정에서 zebrafish, mouse 등의 transgenic animal model 및 stem cell 연구로 연구 범위를 확장하는 중 이었습니다. 다양한 연구 기법에 대한 전문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분야를 지속적으로 개척하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도착하여 근무를 시작하였을 때는 연구소에서 세가지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첫번째로 epilepsy의 원인유전자로 최근 밝혀진 CHD2 mouse model의 phenotyping및 mechanism을 규명한 연구로 논문 투고 후 revision에 대한 마무리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두번째는 post traumatic epilepsy mouse model을 개발하여 여러가지 cell type 중 interneuron의 특이적인 감소를 관찰한 후 progenitor cell을 이식하여 치료효과를 평가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human iPSC를 hippocampal CA1 pyramidal neuron으로 분화시키는 방법을 개발하고, 면역반응이 결핍된 mouse에 human CA1 pyramidal neuron을 이식하여 mouse brain 에서 어떻게 network를 형성하고 기능을 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간단한 PCR이외에는 기초 실험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첫 2달간은 동물실험, 면역조직화학 염색 등 다양한 실험 과정에 참여하였습니다. 어느정도 실험실 생활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연수 후에도 지속 연구가 가능한 분야를 생각해 보았을 때에 세번째 프로젝트인 stem cell연구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Stem cell 연구는 계대배양시에는 최대한 미분화상태로 유지하여야 하고, 분화를 유도할 때는 각 실험별 정해진 기간을 잘 지키고 적정한 분화유도물질을 투여하여야 하는 등 실험 과정이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실제로 실험을 세팅하고 분화 프로토콜을 정립하기 까지 예상보다 긴 시간이 소요가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같이 연구를 진행하던 박사후 연구원이 세포 분리를 위한 virus제작에 들어가 저는 남은 기간을 대뇌 오가노이드 배양기법을 익히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오가노이드 배양에 대해서는 연구실에서도 따로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없었지만, 제가 실험 기법을 익힐 수 있도록 별도로 배려를 해 주었습니다. 실험실 생활을 돌이켜 보면 논문을 쓸만한 정도의 독립적인 연구성과를 얻고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경험을 쌓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귀국 후 새로운 연구분야를 개척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2. 기초연구자의 어려움
연수관련해서 제가 대학에서 받은 직함은 방문교수(visiting associate professor)였지만, 실험실에서는 실제 연구원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실제 기초연구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생활하며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서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의과학연구 분야는 임상에서 실마리를 찾고 결과를 임상에 다시 적용할 수 있는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의 가치를 높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임상 파트의 역할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기초 연구자들과의 역할이 위축되는 경우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Hunt교수도 미국의 뇌전증 연구 분야도 연구비 지원이나 학회 운영이 지나치게 임상 위주로 편향되어 있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연수기간 중 샌디에고에서 열린 Society for Neuroscience학회에 참석하였는데, AES (American epilepsy society) 에서는 볼 수 없었던 훌륭한 epilepsy기초 연구결과들을 접하고 나서는 처음 우물 밖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중개 연구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초연구자들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의학 연구는 순수 기초연구에서 나온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한 자부심이 있어서 성과를 내기까지 단조롭고 불확실한 일상을 하루하루 견뎌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연수 전 여러가지 업무에서 잠시 벗어난 연구원 생활이 제게는 오히려 단순하고 평화롭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기초연구자들의 생각과 어려움을 가까운 거리에서 체험할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3. 캘리포니아 분위기
Irvine은 남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신도시로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온화하고 맑은 날이 겨울에도 지속되어서 지내기에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교민 및 주재원 들도 많이 나와있어 마트, 보험, 골프레슨프로 심지어는 미용실도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 많아 국내에 있을 때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2013년에 보스턴 소아병원으로 혼자 잠깐 단기연수를 갔던 기억이 대비가 되었습니다. 물론, Harvard대학교를 위시한 세계적인 연구클러스터와 UC Irvine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Asian, Hispanic, Arab 등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어 백인 위주의 차별이 많이 희석되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중 화창한 날씨도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덜 경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역할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컨퍼런스, 세미나, 특강 등의 횟수도 UC Irvine이 훨씬 적지만, 규모가 적은 만큼 초청연자와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옆 실험실의 일본인 교수가 하루는 더 좋은 연구센터들이 많이 있는데 왜 UC Irvine의 작은 실험실로 연수를 왔는지 궁금하게 물어보았습니다. 짧은 영어로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지나고 나니 캘리포니아의 자유로운 분위기도 한 몫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연수를 앞두고 계시는 분들은 연수 장소로 LA, Irvine, SanDiego등의 남부 캘리포니아 도시를 고려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4. 맺음말
짧지않은 기간 동안 진료 공백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연수를 허락해 주신 김기중, 채종희 교수님, 그리고 외래 환자분들을 성심 성의껏 진료해 주신 김수연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연수기간 중 쌓았던 경험을 토대로 소아 뇌신경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The Johns Hopkins Hospital 연수기 (Baltimore, Nov. 2017~Oct. 2018)
울산대학교병원 이경연 교수
저는 2017년 11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일년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소재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에 일년간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연수를 떠나기 전, 제 원래 연수 계획은 당시 핫이슈 중 하나였던 자가면역 뇌염을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그와 관련된 해외학자들과 연락을 시도했었고, 시드니 대학의 Russell Dale과 옥스포드 대학의 Sarosh Irani선생님과 이메일을 통해 어느 정도 연수에 대한 이야기가 긍정적으로 진행되기도 하였으나, 결국은 좌절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연수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2016년 겨울, 부산 고신대 병원에 강의 차 오셨을 때 만나 뵈었던 존스홉킨스 의대 김광식 교수님께 이메일을 드렸고, 다음날 곧바로 와도 된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김광식 교수님은 중추신경계 감염 분야의 권위자로,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시고 20대에 도미, 2000년부터는 존스홉킨스의대 소아감염분과 책임자로 계셨습니다.

볼티모어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와 한시간 거리에 있는 메릴랜드 주에서 가장 큰 도시로, 인구는 약 60만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항구도시라 예전에는 조선업을 비롯한 다양한 산업이 발달했었지만, 제조업이 쇄락한 이후 사람들은 도시를 떠났고, 도심 외곽 곳곳에는 빈 집들이 수십년 간 흉물스럽게 방치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한 11월에 볼티모어에 도착하였는데, 솔직히 도시 곳곳에 스산한 분위기가 느껴졌고, 주요 큰 교차로 길가마다 구걸하는 사람들이 돌아다녀서 처음 도시 인상은 그리 호감이 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 볼티모어는 미국 내에서 범죄로 유명한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도시의 이러한 어두운 면에도 불구하고, 존스홉킨스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은 미국 현대의학의 근간을 이루는 크나큰 족적을 남겨온 현대 미국 의학의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대학병원 내에 걸려있는 기념비적인 사건들의 사진과 초상화들이 그 자부심을 보여주는 듯 하였습니다. 또한, 이 대학과 병원은 볼티모어시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이라고 전해 들었는데, 존스홉킨스 대학병원의 경우 고용 근로자가 3만명, 의사는 천 4백명 정도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볼티모어시의 주력 산업 중 하나가 Biomedical 산업이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진짜일까 의아하게 생각했었는데, 병원의 규모와 도시 내에 기타 산업의 쇠락을 고려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수기간 동안에 병원설립 125주년 행사도 있었는데, 병원은 예전의 낡고 고풍스러운 건물부터 최신의 건물까지 다양한 빌딩 콤플렉스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입원 병상수는 채 1,000병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그 많은 인력과 건물, 자원들이 환자 진료뿐 아니라 연구에 사용된다는 점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연수기간 동안 임상진료에는 관여하지 않았고, 김광식 교수님의 실험실에서만 지냈습니다. 실험실에는 5명의 포스트닥 (중국인 4명, 인도인 1명)과 1명의 실험실 매니저가 있었는데, 이들의 전공이 화학, 수의학, 생물학, 약학 등 모두 다르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김광식 교수님 실험실의 주된 연구분야는 세균과 진균의 혈액-뇌 장벽 침투과정에서 세포내 신호전달 경로를 찾는 것이었는데, 김교수님께서는 제게 연수기간 동안 “monocyte transmigration across blood-brain-barrier”라는 연구 주제에 대한 in vitro 실험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기본적이고 간단한 실험이니 해보라고 하셨지만, 이전에 실험실 경험이 전혀 없고 영어도 잘 안되는 저로서는 어찌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실험실 연구원들도 모두 자기 연구와 생활로 바쁘다 보니 제게 별 관심이 없어 보였고, 제가 받은 주제에 대해서는 직접 실험을 해본 연구원들도 없어서 도움을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곧 제 상황을 알아차리신 김 교수님께서는 6개월정도 실험실에 적응하는 기간을 가지라고 하셨는데, 실은 그 기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도 막막했습니다. 다행히, 같은 기관내 다른 실험실에 근무하는 한국인 포스트닥과 연수 오신 한국인 의사선생님들을 만나게 되어, 애로사항을 이야기하고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데, 그분들도 실험 초기에 저와 동일한 고민과 답답함을 겪었다는 경험담을 듣고 실험실에서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한편, 정착초기 실험실 밖에서는 한인 교회 교민들에게서 여러 다양한 도움을 받아 생활에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실험실에서 5개월 정도가 지났을 즈음, 스스로 무엇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본격적으로 파이펫을 잡고 실험실 작업대에 앉았고, 실험실 매니저에게 강요(?)와 같은 간절한 부탁을 해가며 실험을 배웠습니다.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는 김교수님의 제안에 따라, 제 연구 주제에 대해 미팅시간에 한시간 가량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연구원들이 의외로 많은 관심을 보여줘서 동기부여가 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 실험을 위해서는 사람 뇌미세혈관내피세포주와 단핵구세포주가 필요했는데, 단핵구세포주는 김교수님 실험실에 가지고 있지 않아서 타실험실에서 얻어서 실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얻어온 단핵구세포주 배양이 잘 되지 않았는데, 감사하게도 이를 분양해준 타 실험실의 포스트닥 연구원 Stefanie Krug의 도움으로 세포 배양과 이후 실험들을 무사히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Stefanie는 이전 저와는 아는 사이도 아니었고, 본인 연구와 관계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제 부탁을 듣고 도와주기 위해 수 차례 저희 실험실까지 직접 찾아오거나 자신의 실험실로 저를 불러서 실험 기술들과 관련된 도움을 주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한국에 돌아오기 전 그에게 식사도 사고, 선물도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저와 같은 실험실 내 포스트닥 연구원이 단핵구세포주를 사용한 실험을 하는데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었을 때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실험실 생활에 점차 적응하게 되었고, 제 연구주제에 대해 스스로 실험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험 조건을 잡는 데만 2개월 가량의 시간이 흐르고, 아쉽게도 결국에는 실험결과를 얻지 못하고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동안, 틈틈이 미국내 여행을 다니기도 하였는데, 연수 마지막 10일 정도는 미국 동부를 차로 운전하여 캐나다 퀘벡까지 다녀오기도 하였습니다. 뉴욕시에서는 연수 나와 계신 저희 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님의 환대와 관광 안내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환자 진료와 일들로 쫓기던 생활을 하던 저에게 일년간 미국 연수 기간은 선물과 같은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실험실 생활 뿐 아니라, 드넓은 자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자유,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제 인생을 풍요롭게 해준 것 같았습니다. 다시 귀국해서 일상으로 돌아온 지 벌써 1년이 더 지났지만, 연수 시절 경험을 살려서 실험도 지속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이러한 기회를 주신 김광식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미국 생활에 도움을 주셨던 많은 분들과 한국에서 제 대신 환자진료를 해주셨던 저희 병원 소아청소년과 선생님들에게도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mory University Children’s Hospital 연수기 (Atlanta, Oct. 2017~Feb. 2019)
제주대학교병원 김승효
안녕하세요? 제주대학교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김승효입니다.
2017년 8월부터 2019년 2월까지 Emory University Children’s Hospital에서 고수경 선생님 지도하에 연수를 하였습니다. 연수 가기 2년 전에 학회에서 인사를 드렸고 이후 인연이 닿아 몇 번의 만남을 갖고 연수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가슴 졸이며 비자 발급을 기다리다 출국 2주전에야 비자가 나와 가까스로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처음 조지아주 아틀랜타 공항에 도착하였을 때, Koh’s lab에서 데이터 분석가로 일하시는 정효권 선생님께서 차를 갖고 오셔서 그 많은 짐을 함께 날라주시고, 바로 은행 방문(계좌개설), 자동차 등록소, 운전면허 발급기관 등등 직접 저희 가족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서 연수를 받으신 영남대병원 김세윤 선생님의 배려로 대부분의 살림 도구, 가구, TV 및 자동차를 미리 인계 받았고, 연수 준비하면서 필요한 정보들을 상세하게 가르쳐 주셔서 초기 정착 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감사하다는 말 전합니다.
첫 3개월을 정착하느라 좌충우돌하며 분주한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학교 ID/병원 EMR 접속 ID/password 발급, international scholar로 에모리 대학병원 근무에 필수 요건인 사전 현장교육, 영어 온라인 실험 기초 및 윤리 교육, 그리고, 마지막 영어 시험까지… 바쁜 나날들이었지만, 당직과 진료가 없어 마음만은 늘 여유로웠습니다. 집은 에모리 대학 바로 길 건너편에 구하였습니다. 5분 정도 걸어서 학교 안 정류장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5분이면 에모리 신경센터에 닿지만, 바쁠 때 빼고는 셔틀을 타지 않고, 에모리 대학교를 감싸고 있는 몇 만평이나 되는 아주 아름다운 숲길을 걸어 다녔습니다. 걷다 보면 노루, 거북이, 거위, 다람쥐들을 만나게 되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왕복 2시간 정도를 사계절 피톤치드를 온몸으로 받으며 매일 걸어 다녔습니다. 다행히 제가 살던 아파트가 에모리 대학 숲길과 직접 연결이 되어 있어서 집에서 나오면서부터 바로 에모리 숲길이 이어져 다니기에 편하였습니다.
Emory University Children’s Hospital은 세 개의 branch 병원(Eggleston, Scottish Rite, Hughs Spaulding)으로 나뉘어져 CHOA (Children’s Hospital of Atlanta)라는 공통 시스템 아래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연수 중에 또 다른 CHOA 어린이병원이 지어지고 있었습니다. 여러 병원이 연계가 되어 있어서, 소아신경/영상의학과/소아신경외과의 합동 세미나 때에는 이 세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세미나에 참석하였습니다. 진료는 에모리 대학병원내 어린이병원(Eggleston), 그리고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epilepsy center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대학내 병원은 응급실과 입원 환자를 보고, epilepsy center에서는 주로 외래 환자를 보았습니다. 진료는 new onset seizure clinic, non-epileptic event clinic, ketogenic diet clinic, genetic epilepsy clinic, infantile spasm clinic 등 다양한 분야로 나뉘어 세부 진료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외래 한 세션당 환자수는 6-7명 정도였고, 한 환자당 1시간 정도를 할애하여 환자를 보았습니다. 한번은 예약된 환자가 오지 않아 중간에 1시간이 비게 되자, 고수경 선생님이 쾌재를 부르시면서 어린아이처럼 진료실에서 점프하시면서 발부딪히기를 하시고, 춤을 추시는데, 어찌나 귀여우시던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매주 고수경 선생님께서 에모리 의과대학 및 연계병원에서 열리는 세미나 일정들을 정기적으로 메일로 보내주셨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관심있는 세미나에 참석하였습니다. 매주 신경과/신경외과 선생님들과 진행되는 Epilepsy surgery conference, 한 달에 한 번 고수경 선생님 주축으로 열리는 Epilepsy Forum, 소아신경 staff lecture, 전체 소아과 교수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PGR 등 많은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PGR이 열릴 때에는 교수, 연구원, 학생 신분에 관계없이 열띤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학생이 교수에게 반박 토론을 하는 등 거리낌없이 동등한 신분에서 이루어지는 열정적인 세미나였습니다. 대학 근처에는 연구 기관도 많아서, 원하는 세미나에 참석해서 최신 지식들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습니다. Marcus Autism center, 질병관리본부(CDC) 등 여러 기관들이 모여 있었고 여러 연구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에모리 대학내에도 세미나가 매일 열렸으며, 관심있는 세미나가 있을 때에는 참석해서 국내환자들을 머리 속에 올려놓고 해결의 실마리를 얻기 위하여 곰곰이 생각하면서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환자 진료와 일들로 쫓기던 생활을 하던 저에게 일년간 미국 연수 기간은 선물과 같은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실험실 생활 뿐 아니라, 드넓은 자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자유,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제 인생을 풍요롭게 해준 것 같았습니다. 다시 귀국해서 일상으로 돌아온 지 벌써 1년이 더 지났지만, 연수 시절 경험을 살려서 실험도 지속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이러한 기회를 주신 김광식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미국 생활에 도움을 주셨던 많은 분들과 한국에서 제 대신 환자진료를 해주셨던 저희 병원 소아청소년과 선생님들에게도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연수하면서 좋은 인연이 닿았던 것은 고수경 선생님과 Ann & Robert H. Lurie Children's Hospital of Chicago에서 오랜 세월 같이 하신 Anne Berg 선생님을 만난 일이었습니다. 고수경 선생님이 하시는 프로젝트에 연결되어 한 달에 한 번씩 일주일간 에모리 대학병원에 머무르시면서 연구교수로 활동하셨습니다. Anne Berg 선생님과 꾸준히 모임을 갖으면서 연구를 계획하는 단계부터 완성하기까지 데이터에 접근하고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하나하나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논문 초본을 작성하고 드렸는데, Magnificent !! 라고 빨간펜처럼 논문 앞페이지에 써 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처음부터 끝까지 뜯어 고치셨습니다. 결국 magnificent가 아닌 걸로… Anne Berg 선생님과 고수경 선생님의 손을 거치고 나면 전혀 다른 모습의 연구 결과물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같은 내용인데, 전혀 다른 논문이 되었습니다. 마이더스의 손을 경험하였습니다. 유전자 분석과 같은 최신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데이터를 수집하는 단계부터 분석하고 결과를 내기까지의 과정을 익히고, 연구자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배우는 것도 제게는 또다른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데이터 정리하고 논문을 쓸 때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여러 소아신경과 스텝 선생님들과 함께하였습니다. 매달 정기적으로 만나고 소아신경 스텝들 앞에서 영어로 버벅거리면서 발표도 하면서 데이터를 수정해 나갔습니다. Staring spell은 2018년 시카고 CNS meeting에 포스터로 발표하였었는데, 학회 종료 후 수일 뒤에 neurology review magazine 편집장에게 연락이 와서 매거진에 그 결과물이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병원 EMR 시스템 덕분에 데이터 정리가 좀더 수월하였습니다. 미국내 어디에서나 인터넷만 연결되면 차트 조회, 검사 결과 조회가 가능하였습니다. 논문 데이터 정리를 위해 연구실에도 있고, 하루 종일 도서관에 있기도 하고, 커피숍에 앉아서 논문을 작성하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미국내 멀리 여행을 하던 중에도 필요시 차트를 열고 데이터 정리가 가능하였습니다.

연수 기간 내내 고수경 선생님께서 집에도 자주 초대해 주셨습니다. 특히 추석이나 설 때에는 저희 가족을 부르셔서, 손수 만드신 음식을 같이 먹고, 윷놀이도 하고 제주도 이야기, 옛날 이야기도 하면서 명절을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특히, 호탕하신 고수경 선생님 어머님의 말솜씨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과거 제주도 얘기부터 가족사까지 너무나 즐거운 대화였고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고수경 선생님도 에너지가 넘치시는데, 어머님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고수경 선생님 가족분들의 세심한 배려와 돌봄 속에 연수 생활은 큰 문제없이 이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연수 종료하고 떠나는 날 병원 출근 전 새벽에 저희 집까지 오셔서 깜짝 배웅까지 해 주셔서 감동받았습니다. 마지막 날도 정효권 선생님이 모든 짐을 싣고 공항까지 저희 가족을 데려다 주셨습니다. 고수경 선생님과 주변분들 배려에 연수 시작부터 종료일까지 따뜻한 마음 가득 안고 돌아왔습니다.
아틀랜타의 날씨는 1년 내내 온화하여 흡사 제주도와 유사합니다. 춥지가 않아서 아이들이 지내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애들 학교 방학 때에는 1주일씩 여행을 떠났습니다. 초반에는 애틀란타 시내 주변을 중심으로 다녔습니다. 코카콜라 본사, CNN본사, Georgia Aquarium, 지미카터 전 대통령 도서관, 마틴루터킹 기념관, 30분 거리에 스톤마운틴 공원을 비롯하여 4시간 거리에 스모키마운틴 국립공원 등등 볼거리가 가득하였습니다. 특히, 아틀랜타가 미국 남부 항공 및 도로 교통의 요충지여서 어디든 여행을 떠날 때 접근도가 좋았습니다. 도심지도 다녔지만, 주로 국립공원 위주로 여행하였습니다. 미국에 연수오기 전까지는 대자연(Mother Nature)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미국 국립공원들을 방문하여 그 풍광을 바라보는 순간 Nature앞에 Mother를 붙인 이유를 대번에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에모리 대학에 연수를 오든, 타 대학으로 연수를 가든 실험을 하든, 임상을 하든, 새로운 지식도 배우면서 미국의 대자연을 돌아보는 것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에모리 소아 신경센터에서는 new onset seizure clinic, non-epileptic event clinic, 및 early onset epilepsy 환자의 유전자 검사와 관련된 임상 연구 뿐만 아니라, neuroinflammation에 대한 실험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의 뒤를 이어 현재는 경상대 병원, 염정숙 선생님이 고수경 선생님 밑에서 연수를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임상과 실험 둘 다 같이 해보고 싶다면 에모리 소아신경 센터를 고려해 보세요.